하나님의 뜻, 180-56) 안식일,안식년,면제년, 희년>>>===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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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성식 댓글 0건 조회 825회 작성일 12-07-06 16:05본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22:7=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1.하나님의 선하시고,
2.기뻐하시고,
3.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앞으로 몇 차례 더 이러한 기사를 개:제 할려고 합니다.
"백년전쟁"에 패한 프랑스 카레 귀족 6명 희생정신기려.
어디서 유래됐나.
시민들 살리는 대신 영국왕에 죽음 자처/로댕 명작 '칼레의 시민" 탄생 계기.
1347년 프랑스 칼레의 한 시장통, 여섯 명의 남성들이 성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의 몰골은 처참했다.
속옷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았고 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다. 이들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얼핏 보기에도 노예처럼 보이는 여섯 명의 행진에 사람들은 왜 슬퍼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들 여섯 명은 당시 칼레의 시장과 법률가 등 지체 높은 귀족들이었다.
이날 칼레 시민 대표 6명의 다른 시민들을 대신해서 죽음을 맞으려 가는 길이었다.
프랑스의 왕위 계승 문제 때문에 일어난 백년전쟁(1337~1453)에서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도버해협 건너편의 칼레를 정복한다.
그는 장기간 끈질기게 저항한 칼레 시민들을 괘씸하게 여겨 칼레를 완전 짓밟으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꿔 칼레의 지체 높은 귀족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나머지 시민들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에드워드 3세의 제안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 때 칼레의 최고 부자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가 "내가 그 6명 중 하나가 되겠소"라며 선선히 나선 것,
그 뒤를 이어 6명의 귀족이 죽음을 자처해 자원자 7명이 됐지만 생피에르는 그의 집에서 자결을 선택하고 만다.
나머지 6명은 다음 날 에드워드 3세와의 약속대로 영국군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프랑스 말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다행히도 영국 왕비가 에드워드 3세를 설득해 이들 여섯 명은 목숨을 건졌지만 500년 후 프랑스 조각가 오퀴스트 로댕은 이들의 휘생정신을 기려 불후의 명작인 "칼레의 시민"을 제작하게 된다.
칼레의 시민 이전에도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바치거나 직접 전쟁에 나서는 등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로마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은 로마가 융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하지만 로마 귀족들은 이런 도덕심을 점점 잃기 시작하면서 사치와 향략에 불들게 됐고 결국 병역기피 현상까지 두드려졌다.
이 때문에 시민군제를 포기하고 용병제를 선택하면서 로마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특히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필요하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공정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도층의 의무를 역설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나라 지도층이 이와 동떨어져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병역기피나 하이트칼라 범죄 등 일반 국민보다 더 악질적인 일도 서슴치 않는 지도층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쯤 칼레 시민 대표 6인 같은 지도층을 만날 수 있을까?
----------황석하 기자/hsh03@busan.com
美 빌게이츠 등 거부 57명, 재산 절반이상 기부.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이 출범시킨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통해 부동산 재벌인 엘리 브로드, CNN 창업자 테드 테너,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 마크 주커버그 등 57명의 부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키로 해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부와 헌납 외에도 선진국에서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사회적 의무인 병역 의부를 실천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실제로 제1차 세게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 여명이 전사했고,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특히 6.25전쟁 때 아들을 잃은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아들의 군복무 이유에 대해 "내 아들을 전쟁에 파병하지 않았다면, 더욱이 다른 사람의 자식들만을 전선에 파병했더라면,내가 어떻게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류순식 기자 ssryu@busan
경주 "최 부잣집," 만 석 이상 재산 사회환원.
소작료 절반 받고 소작인과 상생 모색,일제 때 상하이 임정 독립자금 후원도,
경주 교동 "최 부잣집"은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다.
최치원 선생의 17세 손으로 병자호란 당시 영웅인 최진립 장군이 기틀을 세운 가문이다.
이 가문의 뿌리는 "내부 전제와 외부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6훈이다.
첫째,과거를 보되 잔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당쟁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둘째,만 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흉년이 들면 오히려 자신의 곡간을 헐어 이웃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
세째,흉년들 때는 땅을 늘리지 마라.-흉년 때 다른 부자는 헐값에 농토를 사들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지만,그 집은 결코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았다.
네째,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어떤 손님이라도 극진히 대접하고, 노잣돈에다 양식거리까지 챙겨 보내는 인심을 썼다.
다섯째,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시집온 며느리들은 3녀난 무명옷을 입게 하라.
병자호란 이후 땅이 피폐해지자, 최부잣집은 관계시설을 확보했다.
그 덕분에 새로운 농사법인 이앙법을 도입하고 노동력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들의 소작농 관리법은 특별했다. 다른 지주들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소작료를 받는 등 지주와 소작인이 상생하는 길을 모색했다.
일제 치하 문중의 장손인 최준은 부산의 백산 안희제91885~1943)선생의 제의를 받아들여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냈다.
또 동생 최완은 대동청년단의 비밀요원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광복 후엔 인재양성에 뜻을 품어 400여년동안 모아온 전 재산을 영남대의 전신인 계림대와ㅣ 대구대에 기부했다.
최 부잣집은 그로써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셈이었다.
최 부잣집에 "조선 최고 부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영원히 따라다니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김길수 기자 kks@busan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1.하나님의 선하시고,
2.기뻐하시고,
3.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앞으로 몇 차례 더 이러한 기사를 개:제 할려고 합니다.
"백년전쟁"에 패한 프랑스 카레 귀족 6명 희생정신기려.
어디서 유래됐나.
시민들 살리는 대신 영국왕에 죽음 자처/로댕 명작 '칼레의 시민" 탄생 계기.
1347년 프랑스 칼레의 한 시장통, 여섯 명의 남성들이 성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의 몰골은 처참했다.
속옷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았고 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다. 이들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얼핏 보기에도 노예처럼 보이는 여섯 명의 행진에 사람들은 왜 슬퍼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들 여섯 명은 당시 칼레의 시장과 법률가 등 지체 높은 귀족들이었다.
이날 칼레 시민 대표 6명의 다른 시민들을 대신해서 죽음을 맞으려 가는 길이었다.
프랑스의 왕위 계승 문제 때문에 일어난 백년전쟁(1337~1453)에서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도버해협 건너편의 칼레를 정복한다.
그는 장기간 끈질기게 저항한 칼레 시민들을 괘씸하게 여겨 칼레를 완전 짓밟으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꿔 칼레의 지체 높은 귀족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나머지 시민들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에드워드 3세의 제안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 때 칼레의 최고 부자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가 "내가 그 6명 중 하나가 되겠소"라며 선선히 나선 것,
그 뒤를 이어 6명의 귀족이 죽음을 자처해 자원자 7명이 됐지만 생피에르는 그의 집에서 자결을 선택하고 만다.
나머지 6명은 다음 날 에드워드 3세와의 약속대로 영국군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프랑스 말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다행히도 영국 왕비가 에드워드 3세를 설득해 이들 여섯 명은 목숨을 건졌지만 500년 후 프랑스 조각가 오퀴스트 로댕은 이들의 휘생정신을 기려 불후의 명작인 "칼레의 시민"을 제작하게 된다.
칼레의 시민 이전에도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바치거나 직접 전쟁에 나서는 등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로마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은 로마가 융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하지만 로마 귀족들은 이런 도덕심을 점점 잃기 시작하면서 사치와 향략에 불들게 됐고 결국 병역기피 현상까지 두드려졌다.
이 때문에 시민군제를 포기하고 용병제를 선택하면서 로마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특히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필요하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공정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도층의 의무를 역설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나라 지도층이 이와 동떨어져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병역기피나 하이트칼라 범죄 등 일반 국민보다 더 악질적인 일도 서슴치 않는 지도층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쯤 칼레 시민 대표 6인 같은 지도층을 만날 수 있을까?
----------황석하 기자/hsh03@busan.com
美 빌게이츠 등 거부 57명, 재산 절반이상 기부.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이 출범시킨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통해 부동산 재벌인 엘리 브로드, CNN 창업자 테드 테너,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 마크 주커버그 등 57명의 부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키로 해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부와 헌납 외에도 선진국에서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사회적 의무인 병역 의부를 실천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실제로 제1차 세게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 여명이 전사했고,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특히 6.25전쟁 때 아들을 잃은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아들의 군복무 이유에 대해 "내 아들을 전쟁에 파병하지 않았다면, 더욱이 다른 사람의 자식들만을 전선에 파병했더라면,내가 어떻게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류순식 기자 ssryu@busan
경주 "최 부잣집," 만 석 이상 재산 사회환원.
소작료 절반 받고 소작인과 상생 모색,일제 때 상하이 임정 독립자금 후원도,
경주 교동 "최 부잣집"은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다.
최치원 선생의 17세 손으로 병자호란 당시 영웅인 최진립 장군이 기틀을 세운 가문이다.
이 가문의 뿌리는 "내부 전제와 외부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6훈이다.
첫째,과거를 보되 잔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당쟁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둘째,만 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흉년이 들면 오히려 자신의 곡간을 헐어 이웃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
세째,흉년들 때는 땅을 늘리지 마라.-흉년 때 다른 부자는 헐값에 농토를 사들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지만,그 집은 결코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았다.
네째,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어떤 손님이라도 극진히 대접하고, 노잣돈에다 양식거리까지 챙겨 보내는 인심을 썼다.
다섯째,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시집온 며느리들은 3녀난 무명옷을 입게 하라.
병자호란 이후 땅이 피폐해지자, 최부잣집은 관계시설을 확보했다.
그 덕분에 새로운 농사법인 이앙법을 도입하고 노동력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들의 소작농 관리법은 특별했다. 다른 지주들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소작료를 받는 등 지주와 소작인이 상생하는 길을 모색했다.
일제 치하 문중의 장손인 최준은 부산의 백산 안희제91885~1943)선생의 제의를 받아들여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냈다.
또 동생 최완은 대동청년단의 비밀요원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광복 후엔 인재양성에 뜻을 품어 400여년동안 모아온 전 재산을 영남대의 전신인 계림대와ㅣ 대구대에 기부했다.
최 부잣집은 그로써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셈이었다.
최 부잣집에 "조선 최고 부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영원히 따라다니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김길수 기자 kks@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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