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180-55) 안식일,안식년,면제년,.......희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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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성식 댓글 0건 조회 634회 작성일 12-06-30 18:03본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22:7=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1.하나님의 선하시고,
2.기뻐하시고,
3.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오늘은 이 기사로 대신 할려고 합니다.
"한국교회"바알과 야훼 중 하나만 택하라”
실용, 선진화, 경제, 부자.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이런 단어들을 기반으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부푼 기대감은 크리스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 안에 교묘하게 자리 잡은 바알주의 곧 ‘물신숭배’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7일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이 마련한 ‘한국교회 각성과 쇄신을 위한 토론회’가 그것이다.
야훼신앙과 바알신앙이 뒤섞인 혼합주의
성경에 등장하는 ‘바알’이라는 단어는 고대 가나안 신 중 ‘폭풍의 신’으로, 가나안에서 비는 그대로 작물의 수확과 연결되기 때문에 ‘승리자 바알’, ‘그름을 탄 자’, ‘땅의 통치자 주’와 같은 수식어가 붙었던 결실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런 바알의 특성 상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도 바알신앙은 끊임없는 유혹의 원천이었고, 선지자들은 바알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꾸짖고 이들을 돌이키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크리스천들도 바알신앙과 야훼신앙의 교묘한 결합 속에서 ‘바알화된 야훼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근주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바알신앙은 현실에서의 즐거움과 풍요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명확히는 ‘물신숭배’로 설명할 수 있다”며 바알신앙의 의미부터 명확히 규정했다.
이러한 바알신앙은 야훼신앙과 양자택일의 문제일 정도로 구분이 명확해야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은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향해 참된 야훼신앙이 무엇인지 전했는데, 참된 야훼신앙은 기도의 형식(기도 대상이 하나님인 것)이 아니라 기도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능을 앞두고 불자도 기독교인도 다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는데 이들의 신앙은 기도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신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신앙은 기도하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내용에 있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기도를 중언부언이라고 규정한 것은 ‘반복’의 의미라기 보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입는 것을 위한 기도’ 이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야훼의 이름을 빌어 기도하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기도라도 그 내용이 바알적인 것이라면 우상숭배 이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만연된 바알주의 우려
이러한 김교수의 지적에 토론자들도 최근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에 만연된 ‘물신주의’를 우려하며 동감했다.
성서한국 구교형 사무총장은 “벤처-주식-카드-로또-도박(바다이야기)-부동산-펀드‘로 이어지는 대박의 꿈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저히 살길을 찾지 못하는 서민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떠올랐다”며 “성경은 경제문제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과 경제제일주의와 같은 두 가지 극단을 피하도록 권고하지만, 지금의 기독교는 사회의 물신주의적 형태를 본받고 있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정재영 실천신할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종교의 생명력은 현실에 대한 ‘초월성’에 있지만, 지금은 종교가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으로 물러나 자신의 입신출세나 개인 영달의 추구 수단이 돼버리고 말았다(종교의 사사화)”고 설명했다.
이렇게 사사화되고 세속화 된 가치에 지배를 받는다면 비록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세속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기준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바알신앙과 야훼신앙의 교묘한 결합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예언자처럼 선포하고 살아야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바알주의에 대한 우려와 현상에 대한 분석은 넘쳐났지만 극복방법은 역시 정공법밖에는 없었다.
김근주 교수는 “예언자의 최대 사명이 가르쳐 전하는 것, 즉 백성들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과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려주는 것이듯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모습에 대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 삶 속에서 민족의 고통을 당했듯, 예언자처럼 선포하고 살아가는 것이 모범답안”이라고 제시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양세진 사무총장은 실제적인 방안으로 “영국성서공회에서는 가난과 정의에 대한 성경 구절을 발췌해 책자로 만들었는데 이러한 작업들이 의식전환 운동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며 “또 우리의 삶이 바알주의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지표가 있어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동희기자,dong423@newsmission.com(뉴스미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1.하나님의 선하시고,
2.기뻐하시고,
3.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오늘은 이 기사로 대신 할려고 합니다.
"한국교회"바알과 야훼 중 하나만 택하라”
실용, 선진화, 경제, 부자.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이런 단어들을 기반으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부푼 기대감은 크리스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 안에 교묘하게 자리 잡은 바알주의 곧 ‘물신숭배’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7일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이 마련한 ‘한국교회 각성과 쇄신을 위한 토론회’가 그것이다.
야훼신앙과 바알신앙이 뒤섞인 혼합주의
성경에 등장하는 ‘바알’이라는 단어는 고대 가나안 신 중 ‘폭풍의 신’으로, 가나안에서 비는 그대로 작물의 수확과 연결되기 때문에 ‘승리자 바알’, ‘그름을 탄 자’, ‘땅의 통치자 주’와 같은 수식어가 붙었던 결실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런 바알의 특성 상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도 바알신앙은 끊임없는 유혹의 원천이었고, 선지자들은 바알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꾸짖고 이들을 돌이키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크리스천들도 바알신앙과 야훼신앙의 교묘한 결합 속에서 ‘바알화된 야훼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근주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바알신앙은 현실에서의 즐거움과 풍요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명확히는 ‘물신숭배’로 설명할 수 있다”며 바알신앙의 의미부터 명확히 규정했다.
이러한 바알신앙은 야훼신앙과 양자택일의 문제일 정도로 구분이 명확해야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은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향해 참된 야훼신앙이 무엇인지 전했는데, 참된 야훼신앙은 기도의 형식(기도 대상이 하나님인 것)이 아니라 기도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능을 앞두고 불자도 기독교인도 다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는데 이들의 신앙은 기도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신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신앙은 기도하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내용에 있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기도를 중언부언이라고 규정한 것은 ‘반복’의 의미라기 보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입는 것을 위한 기도’ 이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야훼의 이름을 빌어 기도하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기도라도 그 내용이 바알적인 것이라면 우상숭배 이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만연된 바알주의 우려
이러한 김교수의 지적에 토론자들도 최근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에 만연된 ‘물신주의’를 우려하며 동감했다.
성서한국 구교형 사무총장은 “벤처-주식-카드-로또-도박(바다이야기)-부동산-펀드‘로 이어지는 대박의 꿈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저히 살길을 찾지 못하는 서민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떠올랐다”며 “성경은 경제문제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과 경제제일주의와 같은 두 가지 극단을 피하도록 권고하지만, 지금의 기독교는 사회의 물신주의적 형태를 본받고 있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정재영 실천신할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종교의 생명력은 현실에 대한 ‘초월성’에 있지만, 지금은 종교가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으로 물러나 자신의 입신출세나 개인 영달의 추구 수단이 돼버리고 말았다(종교의 사사화)”고 설명했다.
이렇게 사사화되고 세속화 된 가치에 지배를 받는다면 비록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세속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기준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바알신앙과 야훼신앙의 교묘한 결합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예언자처럼 선포하고 살아야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바알주의에 대한 우려와 현상에 대한 분석은 넘쳐났지만 극복방법은 역시 정공법밖에는 없었다.
김근주 교수는 “예언자의 최대 사명이 가르쳐 전하는 것, 즉 백성들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과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려주는 것이듯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모습에 대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 삶 속에서 민족의 고통을 당했듯, 예언자처럼 선포하고 살아가는 것이 모범답안”이라고 제시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양세진 사무총장은 실제적인 방안으로 “영국성서공회에서는 가난과 정의에 대한 성경 구절을 발췌해 책자로 만들었는데 이러한 작업들이 의식전환 운동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며 “또 우리의 삶이 바알주의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지표가 있어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동희기자,dong423@newsmission.com(뉴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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