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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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송만오 댓글 0건 조회 1,222회 작성일 11-01-22 17:17본문
백인들의 기득권과 우월적 지위에 의해 주도된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을 반대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지옥과도 같은 로벤섬 감옥에 억류되었다. 혈기방장한 청년 만델라는 그곳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채석장에 배치된 강제 노역장에서 시력을 잃게 할 정도의 강렬한 아프리카 태양 아래 석회석을 절단하고 떼어내는 일이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수감생활 14년이 지나서야 겨우 면회를 허락받고 어렸을 때 헤어진 딸과 만나게 되었다. 면회실로 들어온 딸은 아버지 만델라를 껴 안았다. 성숙한 여인으로 변한 딸과 뜨거운 포옹을 했을 때 넬슨 만델라는 너무나 마음이 쓰라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오직 불의에 맞서 갖은 고역과 수치를 마다한 기개의 만델라 아니었던가? 그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의 애틋한 아버지로서 가슴이 무너졌다. 긴 포옹이 끝나고 딸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아버지 만델라에게 건넸다. 삽과 곡괭이로 돌을 떼어내던 거친 손으로 부드럽고 연하디 연한 갓난아기 손녀의 피부를 만졌을 때,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비애를 느꼈다.
손녀의 이름을 할아버지가 지어주는 남아프리카 전통에 따라 만델라는 아기의 이름을 '자지웨(Zaziwe)' 즉 '희망'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짧은 만남이 끝이 났다. 그리고 그로 부터 자유의 몸이 되기 까지 13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만델라의 거칠고 투박한 손 만큼이나 그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되짚어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저려온다. 한동안 만델라의 그당시 심정이 얼마나 참담 했을까 감정에 몰입했다가 문득 손녀의 이름을 '희망'이라 지어준 이유를 추적해 보았다.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남아공의 불법한 정책이 언젠가 붕괴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은 그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언젠가 새로운 정의가 살아날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을 손녀를 통해 조명한 만델라의 믿음이 여윌 대로 여윈 그의 현재 모습을 결정지었고 그 신념은 어느 누구에게도 잠식당하지 않았다.
생각하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27년의 감옥생활 후 만델라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취임식에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로벤섬 감옥에서 자신을 학대하던 교도관을 취임식 연단에 초청함으로써 은혜와 용서가 무엇인지 전세계에 가르쳤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가진,가늠할 길 없이 강한 힘입니다.
이것은 빛입니다. 우릴 위협하는 어둠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몯습니다.
이렇게 영리하고 아름답고 재능 있고 경이로운 존재인 난 누구인가?
사실, 우리 중 그렇지 않은 이가 누구입니까? 당신은 신의; 아이입니다.
움츠러들어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당신옆의 사람들이 불안해 할까봐 뒷걸음질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의 영광을 천명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것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일은 어느새 다른 일들로 하여금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두려움에서 벗어남으로서,
우리의 존재는 다른 이들을 자유롭게 할것입니다. (1994년 대통령 취임사)"---
그후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진리와 화해 위원회(Truth Reconciliation Commission)' 라는 이름도 복잡한 공식기구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델라는 악의 응징으로 복수의 부작용과 심각성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27년 동안 당한 설움을 무기로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그에게 주어 졌으나 그는 칼을 버리고 대신 은혜를 들고 나왔다.
그 후 2년 반 동안, 남아공 원주민, 군소 부족들, 그리고 기득세력인 백인들은 '진리와 화해 위원회'의 청문회에 귀를 기울였다. 위원회의 규칙은 백인경찰이나 군인이 자행한 잔혹행위에 대해 자발적으로 자백하고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 범죄로 인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강경론자들이 극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만델라는 정의보다 치유를, 처벌보다 용서와 사랑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설득했다. 이 설득은 유효했다.
반드렉이라는 백인 경찰관이 청문회에서 진술했다. 이 사악한 경관은 18세 원주민 소년을 총으로 사살한 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그 시신을 바비큐 고기처럼 불에 그을린 사건을 실토했다. 다시 8년 후 반드렉은 자신이 죽인 소년의 집을 찾아가 소년의 아버지를 아내가 보는 앞에서 장작더미에다 묶어놓고 그의 몸에다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로 태워 죽였다.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잃은 노부인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부인,반드렉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판사가 물었다.
노부인은 반드렉이 남편의 시신을 불태운 장소로 가서 그 재를 모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드렉은 고개를 숙인채 끄덕였다. 이윽고 추가 요구사항을 덧 붙였다.
"반드렉씨는 제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 많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나는 그가 우리집에 와서 하루 동안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나는 반드렉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걸 반드렉씨 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노부인이 범죄자에게 걸어가는 동안 반드렉은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만 졸도하고 말았다.
악을 제어하는 방법으로써 물론 정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파격적인 조치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의를 초월하는 월등한 사건, 바로 선의 힘과 은혜의 위력은 도덕적 실패에 대하여도 기회가 열려있다. 이 위대한 사랑이 활동하는 한, 다시말해 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다 볼 때, 마침내 악은 힘을 잃고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며 불의는 변화를 맞는다.
은혜는 나 같은 사기꾼, 사회 부적격자, 도덕 결함자, 기준 미달자에게도 미래의 계몽되고 진보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접근한다. 장발장의 결함을 찾아다니던 베르베르 형사가 결국 세느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을 보면 권선 징악의 방법으로는 세상에 각박함만을 남길뿐이다.
세상을 잠잠케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써 은혜의 능력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퍼온 글----
수감생활 14년이 지나서야 겨우 면회를 허락받고 어렸을 때 헤어진 딸과 만나게 되었다. 면회실로 들어온 딸은 아버지 만델라를 껴 안았다. 성숙한 여인으로 변한 딸과 뜨거운 포옹을 했을 때 넬슨 만델라는 너무나 마음이 쓰라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오직 불의에 맞서 갖은 고역과 수치를 마다한 기개의 만델라 아니었던가? 그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의 애틋한 아버지로서 가슴이 무너졌다. 긴 포옹이 끝나고 딸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아버지 만델라에게 건넸다. 삽과 곡괭이로 돌을 떼어내던 거친 손으로 부드럽고 연하디 연한 갓난아기 손녀의 피부를 만졌을 때,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비애를 느꼈다.
손녀의 이름을 할아버지가 지어주는 남아프리카 전통에 따라 만델라는 아기의 이름을 '자지웨(Zaziwe)' 즉 '희망'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짧은 만남이 끝이 났다. 그리고 그로 부터 자유의 몸이 되기 까지 13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만델라의 거칠고 투박한 손 만큼이나 그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되짚어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저려온다. 한동안 만델라의 그당시 심정이 얼마나 참담 했을까 감정에 몰입했다가 문득 손녀의 이름을 '희망'이라 지어준 이유를 추적해 보았다.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남아공의 불법한 정책이 언젠가 붕괴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은 그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언젠가 새로운 정의가 살아날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을 손녀를 통해 조명한 만델라의 믿음이 여윌 대로 여윈 그의 현재 모습을 결정지었고 그 신념은 어느 누구에게도 잠식당하지 않았다.
생각하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27년의 감옥생활 후 만델라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취임식에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로벤섬 감옥에서 자신을 학대하던 교도관을 취임식 연단에 초청함으로써 은혜와 용서가 무엇인지 전세계에 가르쳤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가진,가늠할 길 없이 강한 힘입니다.
이것은 빛입니다. 우릴 위협하는 어둠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몯습니다.
이렇게 영리하고 아름답고 재능 있고 경이로운 존재인 난 누구인가?
사실, 우리 중 그렇지 않은 이가 누구입니까? 당신은 신의; 아이입니다.
움츠러들어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당신옆의 사람들이 불안해 할까봐 뒷걸음질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의 영광을 천명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것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일은 어느새 다른 일들로 하여금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두려움에서 벗어남으로서,
우리의 존재는 다른 이들을 자유롭게 할것입니다. (1994년 대통령 취임사)"---
그후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진리와 화해 위원회(Truth Reconciliation Commission)' 라는 이름도 복잡한 공식기구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델라는 악의 응징으로 복수의 부작용과 심각성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27년 동안 당한 설움을 무기로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그에게 주어 졌으나 그는 칼을 버리고 대신 은혜를 들고 나왔다.
그 후 2년 반 동안, 남아공 원주민, 군소 부족들, 그리고 기득세력인 백인들은 '진리와 화해 위원회'의 청문회에 귀를 기울였다. 위원회의 규칙은 백인경찰이나 군인이 자행한 잔혹행위에 대해 자발적으로 자백하고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 범죄로 인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강경론자들이 극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만델라는 정의보다 치유를, 처벌보다 용서와 사랑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설득했다. 이 설득은 유효했다.
반드렉이라는 백인 경찰관이 청문회에서 진술했다. 이 사악한 경관은 18세 원주민 소년을 총으로 사살한 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그 시신을 바비큐 고기처럼 불에 그을린 사건을 실토했다. 다시 8년 후 반드렉은 자신이 죽인 소년의 집을 찾아가 소년의 아버지를 아내가 보는 앞에서 장작더미에다 묶어놓고 그의 몸에다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로 태워 죽였다.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잃은 노부인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부인,반드렉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판사가 물었다.
노부인은 반드렉이 남편의 시신을 불태운 장소로 가서 그 재를 모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드렉은 고개를 숙인채 끄덕였다. 이윽고 추가 요구사항을 덧 붙였다.
"반드렉씨는 제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 많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나는 그가 우리집에 와서 하루 동안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나는 반드렉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걸 반드렉씨 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노부인이 범죄자에게 걸어가는 동안 반드렉은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만 졸도하고 말았다.
악을 제어하는 방법으로써 물론 정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파격적인 조치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의를 초월하는 월등한 사건, 바로 선의 힘과 은혜의 위력은 도덕적 실패에 대하여도 기회가 열려있다. 이 위대한 사랑이 활동하는 한, 다시말해 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다 볼 때, 마침내 악은 힘을 잃고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며 불의는 변화를 맞는다.
은혜는 나 같은 사기꾼, 사회 부적격자, 도덕 결함자, 기준 미달자에게도 미래의 계몽되고 진보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접근한다. 장발장의 결함을 찾아다니던 베르베르 형사가 결국 세느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을 보면 권선 징악의 방법으로는 세상에 각박함만을 남길뿐이다.
세상을 잠잠케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써 은혜의 능력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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