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180-197).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처럼...
페이지 정보
글쓴이 이성식 댓글 0건 조회 717회 작성일 16-04-29 15:57본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22:7=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1.하나님의 선하시고,
2.기뻐하시고,
3.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이며 아울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고백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전11:1=
오늘날 믿는 모양의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를 찾기가 어려운 이 때에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들려지는 말씀인지 생각케 하는 말씀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저 자신을 포함하여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들도 나를 본 받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들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서 세상 돌아가는데로 살아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말이다.
탐심의 우상에 휩쓸려서 이미 하나님 보다는 돈에 맛을 들여서 우리들이 구하는 복도 자식들 잘되고? 건강하고? 적당한 지위와? 자동차? 집? 등 .....
고아와 과부와 객을 돌보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이 하나님의 말슴이 표준이 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또는 다른 교회가 표준이 된 것을 마땅히 여기는 이 때에...
하나의 예를 든다면 교회의 덩치를 키우는 것도 우리들의 이름을 내다가 뿔뿔이 흩어진 바벨탑의 사건과 같이 이미 주후1980년대 또는 90년대에 우리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유럽교회나 미국교회들 처럼 된다고 경고를 하였거마는 혹 되는? 몇몇 교회들을 바라보고[그것도 대부분 수평 이동이었지 않느냐?] 빚을 내어서라도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사람들 보기에 웅장하게 짓기를 경쟁하더니 많은 하나님의 집들이 이단에 넘어가는 비참한 꼴을 바라보면서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하고 있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너희 몸이 곧 성전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그렇다면 이제라도 남 보지 말고 우리들 자신부터라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들의 외양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그러한 삶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보낸 자기 자신의 삶의 편지가 아니겠는가?
그는.
이 복음을 위하여서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것은 좀 없으면 어떨까?
지혜가 좀 없어도,지식이 좀 없어도,병 고치는 은사와 능력 행함이 없어도,방언을 할 수가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더 하는 이 때에 사랑의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며 옛 사람을 쳐서 복종 시키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으며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들도 나를 본받으라고 하신 사도 바울 역시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그는 이 복음을 위하여.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과,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춥고 얼벗었으며,
심지어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죽은줄 알고 성밖에 끌어내 버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 다 우리들에게 다 같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아닐찌라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한다면 그러한 삶을 살기를 몸부림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의 자랑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고후11:30=고 하지 않았는가?
신실한 가이오 장로와 같이 폴리갑 감독과 같은 삶이 나의 삶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의 삶으로 보여드리기를 원하면서 내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만 오로지 바라볼 뿐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1.하나님의 선하시고,
2.기뻐하시고,
3.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이며 아울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고백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전11:1=
오늘날 믿는 모양의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를 찾기가 어려운 이 때에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들려지는 말씀인지 생각케 하는 말씀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저 자신을 포함하여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들도 나를 본 받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들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서 세상 돌아가는데로 살아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말이다.
탐심의 우상에 휩쓸려서 이미 하나님 보다는 돈에 맛을 들여서 우리들이 구하는 복도 자식들 잘되고? 건강하고? 적당한 지위와? 자동차? 집? 등 .....
고아와 과부와 객을 돌보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이 하나님의 말슴이 표준이 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또는 다른 교회가 표준이 된 것을 마땅히 여기는 이 때에...
하나의 예를 든다면 교회의 덩치를 키우는 것도 우리들의 이름을 내다가 뿔뿔이 흩어진 바벨탑의 사건과 같이 이미 주후1980년대 또는 90년대에 우리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유럽교회나 미국교회들 처럼 된다고 경고를 하였거마는 혹 되는? 몇몇 교회들을 바라보고[그것도 대부분 수평 이동이었지 않느냐?] 빚을 내어서라도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사람들 보기에 웅장하게 짓기를 경쟁하더니 많은 하나님의 집들이 이단에 넘어가는 비참한 꼴을 바라보면서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하고 있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너희 몸이 곧 성전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그렇다면 이제라도 남 보지 말고 우리들 자신부터라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들의 외양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그러한 삶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보낸 자기 자신의 삶의 편지가 아니겠는가?
그는.
이 복음을 위하여서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것은 좀 없으면 어떨까?
지혜가 좀 없어도,지식이 좀 없어도,병 고치는 은사와 능력 행함이 없어도,방언을 할 수가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더 하는 이 때에 사랑의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며 옛 사람을 쳐서 복종 시키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으며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들도 나를 본받으라고 하신 사도 바울 역시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그는 이 복음을 위하여.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과,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춥고 얼벗었으며,
심지어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죽은줄 알고 성밖에 끌어내 버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 다 우리들에게 다 같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아닐찌라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한다면 그러한 삶을 살기를 몸부림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의 자랑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고후11:30=고 하지 않았는가?
신실한 가이오 장로와 같이 폴리갑 감독과 같은 삶이 나의 삶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의 삶으로 보여드리기를 원하면서 내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만 오로지 바라볼 뿐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